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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삶의 작은 휴식(끄적끄적)

by 초콜렛시몽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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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 30분.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민준은 눈을 떴다. 잠에서 깬 것이 아니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결과였다. 눈꺼풀이 무거웠고, 가슴은 막혀 있었다. 오늘은 금요일, 하지만 전혀 가볍지 않았다. 회의, 보고서, 팀장 눈치, 부모님의 잔소리, 친구의 결혼식,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갈등. 하나하나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씻고 나와 거울 앞에 섰을 때, 민준은 자신이 누군지 잠시 잊은 듯했다. 말끔한 셔츠와 정장 바지, 그러나 그 안의 얼굴은 공허했다.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눈.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러고 있는 걸까? 물 한 잔을 들이키고 출근 준비를 마친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은 늘 그렇듯 붐볐다. 사람들 사이에 끼인 채로 민준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터널의 어둠 속을 달리는 이 느낌이 요즘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어딘가로 가고는 있지만, 목적지는 모르겠는. 속도는 있지만 방향은 불명확한 삶. 문득, 민준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숨이 막혔다. 갑작스러운 압박감. 이대로 회사에 가면 무너질 것 같았다.

"내려야겠어."

다음 역에서 민준은 갑작스레 몸을 돌려 내렸다. 플랫폼에 선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휴가 신청 메일을 보냈다. 단 하루, 오늘만이라도.

그는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냥 발이 닿는 대로 걸었다. 도심을 벗어나 한참을 걷다 보니 낯선 공원이 나왔다. 나무가 울창했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민준은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풀 냄새,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이 모든 것이 그에게는 오랜만의 위로였다.

민준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고, 사회에 발을 들이면서부터 그는 항상 '해야만 하는 것들'에 쫓겼다. 좋은 성과, 예의 바른 태도, 안정적인 연애,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는 삶. 그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지쳐 있었다. 누구도 그에게 "괜찮니?"라고 묻지 않았다. 모두가 그의 바깥만 보았다. 실적은? 결혼은? 차는 샀니? 집은 언제 살 거야? 그런 질문들이 그의 숨통을 죄었다.

그 순간, 민준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괜찮은가?" 아주 단순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너무도 복잡했다. 그는 잠시 눈물을 흘렸다. 남몰래, 조용히. 이것이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억지로 웃는 것보다, 잠시 울 수 있는 용기가 더 강하다는 것을.

해가 중천에 떴고, 공원은 조금 따뜻해졌다. 민준은 일어나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목적 없이가 아니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무언가를 안고 살아가는 듯 보였지만, 오늘은 그저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핸드폰을 꺼내 여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시간 좀 내서 진짜로 대화해보자. 난 네가 소중하고, 나 자신도 지키고 싶어."

그리고 부모님께는 이렇게 썼다. "요즘 좀 힘들었어요. 걱정하실까 봐 말은 못 했지만, 오늘 하루 쉬면서 많이 생각했어요. 곧 찾아뵐게요."

그는 다시 숨을 깊게 들이켰다. 공기의 무게가 달랐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냥 '지금'의 공기였다. 민준은 알았다.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지만, 가끔은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멈춤이 곧 나아갈 힘이 된다는 것을.

오후 4시, 그는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일찍 자고, 내일은 조금 더 천천히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이 작은 변화가 그의 삶을 조금씩 바꿔갈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민준은 다시 한 번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정말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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